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문단 편집) == 배경 == 19세기 들어 [[에티오피아 제국]]은 제위계승 분쟁이 발생하였다. 이 분쟁은 이 지역을 노리던 [[이탈리아 왕국]]이 후원한 [[메넬리크 2세]]가 황위에 오르며 종식되었고 메넬리크 2세는 1889년 5월 2일 우찰레 조약을 통해 자신을 밀어준 이탈리아 왕국에 보답하였다. 우찰레 조약에 의해 에티오피아 북부의 [[에리트레아]] 지역이 이탈리아의 식민지로 넘어갔는데 이 지역은 근대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의 해외 [[식민지]]였다. 표면적으로는 화기애애해 보이는 양국 사이의 관계였지만 사실 시작부터 독소조항이 숨어있던 친선 관계였다. 에티오피아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이 서로 우호를 위해 체결한 '''우찰레 조약'''에는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식민지화를 위한 포석이 담겨 있었던 것. 조약 중 제 17조 '에티오피아의 외교권'에 대한 부분이 문제의 발단. 이 조항에는 에티오피아 제국이 외교권을 행사하는 부분에 있어 이탈리아에게 자문을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에티오피아 제국은 '이탈리아에게 자문을 '''할 수도''' 있다'고 해석한 반면 이탈리아 왕국은 '이탈리아에게 자문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에티오피아의 [[을사조약|자주적인 외교권]]이 달린 문제였고 이탈리아 왕국은 이 조항을 근거로 에티오피아를 압박하고 나서며 식민지화를 위한 포석을 다지고 나섰다. 이탈리아 왕국은 '''에티오피아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노골적인 보호국화를 노렸고 최종적으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전초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이는 당시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서는 기본 공식이나 다름없었던 행위였다. 당장 [[을사조약]]에서 볼 수 있듯이 열강들이 어떤 국가를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차지하려 드는 게 외교권이었다. 이 문제로 양국의 [[분쟁]]이 가시화되었고 이탈리아 왕국의 압박에 격분한 메넬리크 2세는 1893년에 우찰레 조약의 완전 폐기를 선언했다. 국가 간의 분쟁에 있어 대화보다는 힘이 앞섰던 시대였고 눈치 볼 이유도 없는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분쟁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이를 빌미로 에티오피아 침공을 개시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